[뉴스] [현장] 한국기업들, 중국서 짐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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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한국기업들, 중국서 짐싼다
대중 무역적자 시대 중국 가보니
지난 11일 오후 중국 허베이성 창저우의 현대차 공장 정문. 이날 생산을 하지 않아 오가는 차가 없었다. 창저우/최현준 특파원
지난 11일 오후 중국 허베이성 창저우의 현대차 공장 정문. 이날 생산을 하지 않아 오가는 차가 없었다. 창저우/최현준 특파원
“2016년 현대차가 공장을 세울 때만 해도 지역 사람들이 모두 기뻐했는데, 7년 만에 문을 닫는다고 하네요. 너무 아쉬워요.”
지난 11일 오전 중국 수도 베이징에서 남쪽으로 200㎞ 떨어진 허베이성의 작은 도시 창저우. 이곳에서 만난 주민 주는 “현대차 공장이 곧 문을 닫는다는 소문을 들었다”며 아쉽다고 했다. 실제 창저우 외곽에 자리한 2㎢에 이르는 창저우 현대자동차 공장에는 평일 오전임에도 오가는 차량이나 사람이 거의 없었다. 공단 한쪽에 있는 현대모비스 공장도 마찬가지였다. 공장 정문에서 일하는 한 보안 요원은 “오늘은 생산을 하지 않는 날”이라고 했다. ‘언제부터 생산을 중단했느냐’는 질문에 “어제도, 그제도 생산하지 않았다. 내일은 생산을 한다고 들었다”며 “요즘은 매일 생산을 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현대차가 중국 내 네번째 현지 공장으로 창저우에 공장을 세운 지 불과 7년 만에 공장 폐쇄를 고민하고 있다. 현대차는 기아차와 함께 2016년 중국 자동차 시장 점유율을 10%(179만대)까지 끌어올리며, 중국 공장을 5개로 늘렸다. 하지만 한 곳은 매각했고 네 곳은 가동을 중단했거나 가동률을 대폭 낮춘 상황이다. 현대차·기아의 중국 시장 점유율이 최근 1%대로 급락한 탓이다. 현대차의 빈자리는 중국산 자동차가 빠르게 대체했다. 중국 전기차 업체 비야디(BYD)는 올해 중국 시장에서 2008년부터 판매량 1위를 지켜온 폴크스바겐을 누르고 판매량 1위를 차지했다.
이날 오후 창저우에서 북쪽으로 60㎞ 떨어진 톈진의 위니아대우전자 공장도 한동안 가동을 중단한 듯 공장 내부가 텅 비어 있었다. 공장 입구에 ‘환영합니다’라고 쓰인 빛바랜 한글 간판이 이곳이 한국 기업의 공장이었음을 보여줬다. 위니아전자는 이곳에서 냉장고와 세탁기 등 연간 2천억원대의 제품을 생산했지만, 지난 2월 공장을 중국 회사에 매각했다. 위니아 관계자는 “경기 불황과 소비 심리 위축으로 재고량이 급증하면서 생산이 급감했다. 코로나 기간에도 거의 생산하지 못했다”며 “올 초 중국 국적 회사에 공장을 매각했다”고 말했다.
11일 오후 중국 톈진의 위니아대우전자 공장이 텅 비어 있다. 위니아전자는 올 2월 공장을 중국 회사에 매각했다.
지난해 5월 시작된 대중국 무역 적자가 이어지고 중국 진출 기업의 부진까지 겹치면서 1992년 8월 수교 이후 30년 넘게 중국이란 ‘거대 시장’에 기대 성장해온 한국 경제에도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한국의 부진이 이어지는 단기적 이유는 ‘수출 대들보’인 반도체의 실적 하락이지만, 근본적 원인을 따지고 들면 한국 제품의 경쟁력 하락과 무서울 정도로 빠른 중국 기업들의 추격 움직임이라는 지적이 이어진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11일 공개한 ‘대중 수출 부진에 대한 기업 인식 조사’ 자료를 보면 ‘기업들이 체감하는 중국 기업과의 기술 경쟁력 격차’에 대해 ‘비슷한 수준’(36.6%)이라는 답과 오히려 한국이 ‘뒤진다’(3.7%)는 답을 합치면 40.3%에 이르렀다. 중국에 앞선다는 답변도 ‘3년 이내’(38.7%)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향후 5년간 한국과 중국의 기술 성장 속도’에 대한 질문에는 ‘중국의 성장 속도가 한국을 능가할 것’(41.3%)과 ‘비슷할 것’(35%)이라는 응답이 70%를 넘었다.
이런 변화로 인해 ‘중국 내 한국 생산기지’로 불렸던 톈진은 2010년대 초 2500여개에 이르던 한국 기업이 10여년 만에 500여개로 감소하는 등 상황이 심각하다. 박홍희 톈진 한인회 회장은 “중국의 제조업 추격 속도가 빠르다 못해 무서울 정도”라며 “일반 제조업은 경쟁력을 거의 잃었고, 서비스업이나 기술집약 산업 정도만 살아남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12일 오전 중국 톈진의 궈마오쇼핑중심. 이곳에 이니스프리 매장이 있었지만 2년 전 철수했다. 톈진/최현준 특파원
한국 제품의 고전은 자동차나 전자제품 등에 한정되지 않는다. 한류 열풍과 함께 중국 젊은이들이 선호했던 한국산 화장품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12일 아모레퍼시픽의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 ‘이니스프리’ 매장이 있다고 해 찾아간 톈진 궈마오쇼핑중심(국제무역쇼핑센터)에서는 해당 매장을 찾을 수 없었다. 이 쇼핑센터의 한 직원은 “한국 화장품 매장이 있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현재는 중국 화장품 편집 매장만 있다”고 했다. 해당 매장은 2021년 6월 철수했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최근 중국에서 일고 있는 ‘궈차오(国潮·국산품 애용) 소비’ 때문이다. 대한상의 조사에서도 ‘궈차오 열풍에 따른 한국 제품 선호도 감소를 체감하냐’는 질문에 그렇다는 답변은 32.7%에 달했다.
아모레퍼시픽은 2019년 이니스프리 매장을 중국 전역에 600여 곳까지 늘렸지만 지난해 말 매장을 64곳으로 줄여야 했다. 하지만 판매 부진을 이기지 못하고 올 상반기에 이 브랜드를 중국 시장에서 철수할 예정이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2016년 말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로 (판매가 줄어드는 등) 큰 타격을 받았다”면서도 “중국 화장품의 품질 향상과 판매 증가가 철수의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직 중국산 경쟁력이 약한 고급 화장품 시장에서 승부를 걸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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